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의학 학술단체인 대한의학회(이하 의학회)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와 함께 정치권이 제안한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하기로 했다. 지난달 초 여야가 협의체 구성을 추진하고 나선 지 두 달여 만으로, 8개월째 교착 상태인 의·정 갈등 해결에 단초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22일 의학회와 KAMC는 공동 입장문을 내고 “의대생-전공의로 이어지는 의료인 양성 시스템의 파행과 한국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대한민국 의료의 정상화를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협의체에 참여해 전문가 단체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여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협의체의 첫 만남은 이달 내 열릴 것으로 보인다.

1966년 출범한 의학회는 전공의 수련을 관할하는 주요 전문 과목 학회를 비롯해 194개의 학회를 아우르는 단체다. KAMC는 전국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의 학장들이 모인 단체다. 각각 전공의·의대생의 수련·교육을 책임지는 의료계 학술단체가 사태 해결에 총대를 메고 나선 셈이다.

“한국의료 붕괴 직전…절박한 마음에 나섰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대한전공의협의회 등 다른 의료계 단체들이 동참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참여를 결정한 의학회와 KAMC는 협의체에서 다룰 의제로 다섯 가지를 내세웠다. ▶2025년 및 2026년 의대 입학정원 논의와 의사정원 추계 기구 입법화 위한 시행계획 설정 ▶의대생 교육, 전공의 수련 내실화 위한 국가 지원 보장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독립성 보장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 개편을 통해 투명한 정책 결정의 장으로 운영 등이다.

이진우(연세대 의대 교수·사진) 의학회 회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반대하지만, 이대로 대한민국 의료가 무너져선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회장과의 일문일답.

의·정 갈등 8개월, 의료계에서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의학회와 KAMC가 십자가를 짊어진 느낌인데.
“그렇게 됐다. 의·정 갈등이 빨리, 올바르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진척이 없고, (해결) 가능성도 없어 보이고, 그간 유일한 희망이 정부의 태도 변화였는데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다. 결국 여·야·의·정 협의체에서 논의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판단했다.”
의학회와 KAMC가 의료계를 대표해 합의를 할 수 있을까.
“협의체에 들어간다 해서 모든 걸 합의하겠다는 게 아니다. 일단 대화의 물꼬를 트고 서로 신뢰를 쌓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겠나. 또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하는 정책을 일단 협의하면서 스톱(중단)시키고자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하는 정책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한국의학교육평가원에 대한 부분, 의료개혁특위가 추진 중인 상급 종합병원 구조개혁 계획, 의대 정원 증원 등이다.”
왜 현시점에 나선 것인지, 계기가 있나.
“이제는 더는 늦출 수 없다고 판단했다.”
더 늦어지면 어떻게 될까.
“한국 의료는 완전한 붕괴의 초입에 들어섰다. 지금이 마지노선이다. 이대로면 2025년 정원 문제는 끝나버릴 것이고, 상급 종합병원 구조개혁, 의평원에 대한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저지하려면 지금 아니면 안 된다.”
입장문에 2025년 의대 정원 논의를 대화의 조건으로 담았는데 가능할까.
“정시는 아직 남았다.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여러 대안을 궁리해 볼 수 있다고 본다.”
조건이 조율 안 된다면 협의체를 다시 나올 수도 있나.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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