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서울 충무로 일대 새로 들어선 베이커리 카페와 식당. 이보람 기자

사내 맛집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직장인 이세영(34)씨는 최근 직장 동료들과 충무로를 찾았다. 넷플릭스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흑백요리사’에 출연했던 요리사가 운영하는 식당에 방문하기 위해서다. 와인과 함께 생(生) 트러플이 올라간 파스타와 갈비살 스테이크 등을 맛있게 먹었다. 이씨는 “회사는 강남에 있지만, 요샌 ‘힙무로’가 대세라고 해서 와 봤다”고 말했다. ‘힙무로’는 멋있고 매력적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힙(hip)에 충무로를 합친 말이다.

충무로가 부활하고 있다. 인쇄업 장기 불황과 대한극장 폐업 등으로 저물던 충무로지만, 최근엔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힙플’(힙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힙무로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소규모 인쇄업체들이 즐비했던 골목 구석구석엔 젊은이들 취향에 맞는 독특한 콘셉트를 가진 작은 카페나 식당들이 잇따라 생겼고 수십 년 된 저렴한 노포 식당들까지 입소문을 타면서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24일 오후 사람 두 명이 겨우 지나다닐 만한 비좁은 인현시장 골목길. 친구와 함께 인현시장을 방문한 대학생 김혜윤(20)씨는 “2만원이면 안주가 한 상 나오는 가성비 좋은 ‘이모카세’ 맛집이 있다고 해서 와 봤다”며 “줄이 길다고 해서 근처 예쁜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놀다가 직장인들이 오기 전에 가보려고 일찍 왔다”고 말했다.

평일 낮이었지만 일본풍 ‘메론빵’을 주메뉴로 판매하는 한 카페에는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빵을 사가는 손님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여자친구와 함께 빵을 사가지고 나온 강모(25)씨는 “일본에서 파는 메론빵을 똑같이 만드는 것으로 이미 유명한 가게”라며 “앉을 자리가 없어서 포장해서 나왔다”고 했다.

젊은이들 사이 충무로의 인기는 ‘레트로(Retro)’ 유행을 타면서 지난 수년 새 을지로가 ‘힙지로’로 부상한 게 인근 충무로까지 확장된 영향이 크다. 가수 성시경, 나영석 프로듀서(PD) 등 인플루언서들이 충무로를 방문한 영상을 소셜미디어 계정에 공개한 것도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다. 성시경은 맛집을 소개하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인현시장 안에 있는 한 식당을 찾아 닭날개 구이와 계란당면볶음 등 음식을 시켜 먹고 “궁극의 포장마차”라고 극찬했다. 나 PD는 배우 김대명과 충무로의 한 노포 중국 음식점을 방문해 간짜장을 먹는 모습을 보여줬다. 충무로의 유명세에 인스타그램에서 ‘힙무로’ ‘충무로’ 등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관련 게시물이 수천여개 가까이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 기존 상인들은 힙무로 부활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취객 등으로 인한 각종 불편도 호소한다. 10년 가까이 인근에서 인쇄물 운반 일을 해 온 이모(51)씨는 “작년에 본격적으로 근처에 술집들이 생기면서 젊은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골목골목마다 담배꽁초나 구토한 흔적들이 있어서 일하다가 불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근처 식당 주인인 박모(69)씨도 “젊은 사람들이 하는 새로운 가게들이나 잘 되는 것이지 우리는 그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과도한 젠트리피케이션이 문제가 되면 기존 상권이 와해될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수준에서 변화를 수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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