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醫政) 갈등이 봉합 국면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으나 오히려 '강대강' 대치가 강화되는 양상이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장기화 되고 있는 의정(醫政) 갈등이 봉합 국면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으나 오히려 '강대강' 대치가 강화되는 양상이다.

박단 대전협 회장이 의대 교수를 향해 "착취자"라는 게시물을 올리고, 의협 내부에서도 비대위 원장과 신임 당선인간 의견 차이가 부각되며 의료계가 내분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의협은 14일 "의사단체의 단일한 요구는 의대 증원의 원점 재논의"라는 기조를 재차 강조하면서 의사들의 '단일대오'를 과시했고, 사태 후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사직 전공의들은 복지부 장·차관 경질을 요구하고 나섰다.

반면, 정부는 총선 후 닷새 만에 첫 입장을 내놓으면서 의료개혁에 대한 '변함없는 의지'를 밝혔다.

내분 겪던 의사단체, '의대증원 방침 원점 재검토' 단일 메시지

의정갈등 국면에서 내분을 겪던 의사단체는 14일 '의대증원 방침 원점 재검토'라는 단일 메시지를 내기 시작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이날 비대위 회의 뒤 브리핑에서 "의사단체의 단일한 요구는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원점 재논의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밝혔다.

김성근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육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배정 시스템을 중지할 것을 요청한다"며 "이 시스템이 계속 진행되는 한 이 논의를 (의료계와) 진행하겠다는 정부 측의 진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전공의들과 의협 간부에게 내려진 행정명령을 취소해달라고도 요청했다.

김 위원장은 "전공의들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등 부당한 행정명령을 취소해달라"며 "김택우 비대위원장과 박명하 조직위원장의 의사면허가 15일부터 3개월간 정지된다. 이들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명령도 취소해달라"고 요청했다.

수련병원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의대 교수들과 병원을 에둘러 비판해 논란이 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에 대해서는 단순한 '해프닝'이었다고 일축했다.

김 위원장은 "약간의 해프닝 정도로 받아주시면 좋을 것 같다"며 "특별히 교수들을 비난하거나 병원을 비난하거나 그럴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얘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지난 12일 밤 자신의 SNS 계정에 '1만2천명에 휘둘리는 나라, 전공의를 괴물로 키웠다' 제목의 한 일간지 기사를 링크하며 "전공의들에게 전대미문의 힘을 부여한 것은 다름 아닌 정부와 병원"이라고 기사 본문의 내용을 옮겨 적었다.

그러면서 "수련병원 교수들은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불이익이 생기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들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착취의 사슬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해왔다"고 적었다.

김 위원장은 또 "의협을 중심으로 모든 의사가 뭉쳐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의협 비대위는 끝까지 전공의와 학생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과 임현택 의협 차기 회장 당선인은 이날 브리핑 와중에 포옹과 악수를 하며 의협 내분 조짐을 불식했다.

김택우 위원장은 "그간 비대위와 (임현택 차기 회장) 당선인과 소통이 부족했지만, 현재 의협은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선인, 대전협 위원장,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의협, 개원가 모든 직역이 총망라해서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철회하고 재논의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열심히 같이 잘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해 당사자인 전공의들이 그들의 목소리와 생각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을 했다면 그 화답은 정부, 대통령이 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향후 저희와 정책 파트너로 같이 해결해 나간다면 틀림없이 해결책이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현택 당선인도 "14만 의사들 모두 이제 하나다라는 합의를 오늘 이뤘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힘을 합쳐 가기로 했다"며 "정부와 여당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좀 발전된 입장에서 대화로 나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직 전공의 1360명 첫 공식 석상 "복지부 장·차관 경질해야 병원 복귀.. 공수처 고발"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반발해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 1360명도 15일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을 경질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조 장관과 박 차관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소하기도 했다.

이들은 "정부가 수련병원장들에게 직권을 남용해 전공의들의 사직서 수리를 금지했고 필수의료 유지 명령과 업무개시 명령을 내려 젊은 의사들이 본인의 의지에 반하는 근무를 하도록 강제했다"며 "전공의들의 휴식권과 사직권, 의사로서 전공의가 아닌 일반의로 일할 수 있는 직업 선택의 자유, 강제노역을 하지 않을 권리 등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보장된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 차관이 건재한 이상 의료계와 정부 사이의 정상적인 소통은 불가능하다"며 "이 사태의 책임자인 박 차관을 경질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박 차관이 경질되기 전까지는 절대 병원에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박 차관이 의대 증원과 관련한 정부와 의사단체 간 소통을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정 전 대표는 "(전공의들의) 공통된 얘기는 박 차관이 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것"이라며 "박 차관은 이번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을 주도하면서 초법적이고 자의적인 명령을 남발했다. 근거가 부족하고 현장에서 불가능하다고 하는 정책을 강행하기 위해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오롯하게 존중받아야 할 젊은 의사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박 차관은)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젊은 의사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했다"며 "전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권리를 무시당해도 되는 대상을 과연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할 수 있냐.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사고방식을 우리는 '전체주의'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사직 전공의 1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검은 옷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세계최고 한국의료 근거 없이 탄압하나', '근거없는 2000명 당장 철회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

한편, 전공의들은 지난 2월20일 대전협 임시대의원총회 이후 정부와 대화 선결 조건으로 7대 요구안을 내걸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7대 요구안에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대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전공의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이 담겼다.

의대 수업이 재개됐으나 다시 개강을 연기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의대 80% 수업 재개한다더니…학생 없자 또다시 '개강연기'

의대 수업 재개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이번주부터 전국 의과대학의 80%가 수업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의대생들이 강의실로 돌아오지 않으면서 또다시 개강을 연기하는 대학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번주 의대 수업을 재개하려 했던 성균관대, 건양대, 원광대, 전남대, 조선대 등은 또다시 개강을 미루기로 했다. 성균관대와 건양대, 전남대는 29일로, 원광대는 22일로 연기했다. 조선대는 이날 논의를 거쳐 개강일을 다시 정할 예정이다.

이들 대학은 의대 증원과 관련한 학생들의 집단행동이 지속되면서 수업을 정상화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장은 급한 대로 4월 말까지 개강을 미뤄놨지만 그때에도 갈등이 수습되지 않으면 수업 재개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지난 9일 '의대 수업운영 및 재개현황'을 발표하면서 이날부터 16개 의대가 추가로 수업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8일 기준으로 16개 의대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주부터는 전국 40개 의대 중 32개교가 수업을 재개할 것이라고 관측됐다.

하지만 의대생들의 단체행동이 지속되면서 수업 정상화는 예상보다 더뎌지는 분위기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날까지 전국 40개 의대에 접수된 '유효' 휴학계는 누적 1만442건이다. 이는 전국 의대 재학생(1만8793명)의 55.6%에 해당한다. 수업거부가 확인된 의대는 8개교다.

의대들은 학생들의 출석을 유도하기 위해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부 의대에선 강의 자료를 다운받기만 해도 출석을 인정해주는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대부분 의대 학칙상 수업일수의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 결석하면 F 학점을 주는데, 한 과목이라도 F 학점을 받으면 유급 처리된다.

교육부는 동맹휴학을 사유로 한 휴학 신청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의대생 휴학 신청 집계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교육부 관계자는 "(의대) 수업을 이번주부터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휴학생 통계를 받는 게 의미가 없어서 다음주부터 통계를 받지 않는 것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 "의료개혁 변함없어" "의료계, 통일안 제시해야"

총선 후 정부가 처음으로 낸 메시지는 의대 증원 방침을 변함없이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의정갈등이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이유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15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열고 "정부의 의료개혁 의지는 변함 없다.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 4대 과제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선결조건"이라며 "의료개혁 과제에 대한 발전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여당 참패로 끝난 총선 결과에도 기존 방침대로 의대 증원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정부는 총선 이후인 지난 11일부터 의사 집단행동 관련 브리핑을 한 차례도 열지 않았다. 이에 일각에선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동력이 약화한 것 아니냐 분석이 제기됐다.

조 장관은 의사단체에 집단행동을 멈추고 통일된 안을 제시해달라고도 재차 요구했다.

그는 "2025년도 대입 일정을 고려할 때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의료계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통일된 대안을 조속히 제시해 주시기 바란다. 정부는 열린 자세로 진정성을 갖고 의료계의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계 여러분은 집단행동을 멈추고 조속히 대화에 나서주시기 바란다"며 "정부는 국민 생명과 건강 보호를 최우선에 두고 의료 공백이 최소화되도록 비상진료체계 유지에 더욱 만전을 기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직 전공의들은 복지부 장차관 경질을 요구하며 공수처에 고발했다 [사진=연합뉴스]

경실련 "총선 결과가 의대 증원에 대한 국민심판? 의사들 후안무치"

한편, 시민단체들은 정부를 향해 흔들림 없이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5일 "여당의 총선 대패가 의대 증원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는 의료계의 해석은 의료 대란을 만든 당사자의 적반하장이자 후안무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이날 논평을 내고 "여당의 총선 대패는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과 미숙한 국정 운영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면서 의료계의 총선 결과 해석을 비판했다.

경실련은 "시민사회·소비자·환자단체들은 정부에 의대 증원 추진을 계속 요구했다"며 "정부의 일방적 증원 규모 결정이라는 주장이야말로 의료계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경실련은 또 "불법 행동으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불편을 초래한 의료계는 사태 파악도 못 하고 총선 결과를 악용하며 정부에 원점 재논의를 주장하고 있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의사의 본분은 뒷전으로 한 채 오직 특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입장을 관철하려는 유아독존적 사고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의료계는 총선 결과를 의대 증원에 대한 민심이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원점 재검토'라는 단일안을 내걸고, 사직 전공의들은 보건복지부 차관을 고소한다고 한다"며 "이렇게 특권 의식에 취해 있는 의료계 행태를 국민이 얼마나 더 참고 기다려야 하나"고 물었다.

경실련은 건강보험 비급여 보고제도의 시행 지연과 앞선 정부의 의대 증원 무산 사례 등을 들며 "더 이상 정부가 의료계에 휘둘려서 정책 집행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제시한 의대 증원 1년 유예 방안을 두고는 "의료독점권의 구조적 폐해도 인지하지 못한 단편적 발언"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선거로 주춤했던 의대 증원 추진을 조속히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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