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3대 비극작가 2 -

그리스 비극은 봄에 나온 새 술을 주신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디오니소스 대축제 기간 중에 아크로폴리스 신전에 딸린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상연되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 비극은 디오니소스로 시작해서 디오니소스로 끝나는, 디오니소스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주신 디오니소스

디오니소스는 누구일까요? 그는 포도의 신, 포도주의 신, 술의 신, 그리스 주신(酒神)입니다. 진짜 그리스 주신(主神)인 제우스가 테베의 공주 세멜레를 집적댑니다. 이를 눈치챈 제우스의 아내 헤라가 이를 그냥 두고 볼 리 만무합니다. 어느 날 세멜레의 유모로 변신한 그녀는 “공주님에게 접근하는 그이가 혹 제우스를 사칭하는 가짜일 수도 있으니, 올림포스에서의 진짜 모습을 한 번 보여달라고 시험해보세요.”라고 꼬드깁니다. 이 꼬임에 넘어간 세멜레는 제우스에게 당신의 본모습을 보여달라고 부탁합니다.

제우스는 난감해합니다. 그래서 세멜레를 설득하려 하지만, 이를 의심스럽게 여긴 그녀는 제우스의 말을 좀체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결국 제우스는 나름 신경 쓴다고 빛이 가장 덜 눈 부신 옷을 입고, 가장 힘이 약한 번개를 들고 세멜레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인간이었던 세멜레는 제우스를 보자마자 바로 새카맣게 불타 죽고 맙니다. 제우스는 서둘러 죽은 세멜레의 배에서 태아를 꺼내 자신의 허벅지를 갈라 그 안에 넣고 꿰맵니다. 그렇게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산달을 채우고 태어난 아들이 바로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입니다.

어미 없이 홀로 자라게 된 디오니소스는 허구한 날 좋아하는 포도 넝쿨 아래서 뒹굴고 놉니다. 그러다 우연히 맛본 달콤한 포도주에 빠져듭니다. 그의 스승인 실레노스 또한 항상 고주망태로 술에 취해 사는 지혜로운 노인이었습니다. 성룡에게 취권을 전수하던 바로 소화자 같은 이였습니다. 성룡이 그의 밑에서 무림의 고수가 되듯 디오니소스도 실레노스의 가르침(?)을 받아 주신으로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이런 환경에서 주신이자 욕망과 광란의 신 디오니소스가 탄생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매년 봄에 술을 담아 새 술을 바치는 대축제 기간에 그리스 비극이 공연되었습니다.

그리스 비극은 기원전 5세기에 그 전성기를 이룹니다. 배경에 페이시스트라토스라는 아테네 포퓰리스트 정치가가 있습니다. 그는 아테네 귀족 출신이면서도 ‘민중’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사실 이런 자가 위험합니다. 자신의 신분을 뛰어넘는 언행이 때로는 깊은 성찰에서가 아니라 개인의 욕망에서 비롯된 위선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일수록 유난히 민중을 앞세우고, 계급의 이익을 더 자주 입에 올리기 때문입니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자신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조폭이든 양이치든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고, 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라면 국가 재정이 어떻게 되는 말든 무엇이든 퍼줄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에 걸쳐 그런 계략으로 권력을 잡고서도 매번 귀족들에게 축출당하자 마지막에는 무력을 동원해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해버립니다. 사실 그에게 권력이란 언제든 정치 공학적 계략으로, 또 필요하다면 무력으로 탈취할 수 있는 대상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 그에게 민중은 자신의 권력욕을 채울 수단이자 대상에 불과했던 겁니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쿠데타로 집권한 후 먼저 친서민 정책과 선동으로 대중의 인기와 지지를 한껏 끌어올립니다. 그리고 계획한 대로 친위세력을 앞세워 민주정을 폐하고 스스로 참주에 오릅니다. 솔론의 개혁이 낳은 아테네 민주정의 전형적인 기형아였습니다.

이런 자가 더 위험합니다. 민주주의는 민중을 짓밟는 반민주주의자보다 친민중 정책을 펼치는 포퓰리스트에 의해 더 왜곡됩니다. 그리고 더 퇴행합니다. 그래서 혹자는 민주주의는 시혜 대상이 아니라, 인민의 각성과 비판과 투쟁으로 수호하고 쟁취할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자칭, 타칭 어떤 민주주의로 포장하든 인민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어떤 시도를 한다면 그자는 가짜입니다.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페이시스트라토스가 디오니소스 대축제 기간에 열리는 비극 공연에 경연제를 도입한 것도 그러한 시도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경연제를 통해 그리스 3대 비극 작가가 출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바로 그들입니다. 이제 그들의 대표작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 《오십, 고전에서 역사를 읽다》 (가디언, 2022)
 

최봉수 칼럼니스트

최봉수

김영사 편집장
중앙 M&B 전략기획실장
웅진씽크빅 대표이사
메가스터디 대표이사
프린스턴 리뷰 아시아 총괄대표
주요 저서 <출판기획의 테크닉>(1997), <인사이트>(2013), <오십, 고전에서 역사를 읽다>(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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