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에세이스트 캐슬린 제이미, 유물 발굴 경험 담은 ‘산문집’

‘멸망한 문명 흔적’ 등 과거 인류의 삶 돌아보며 현대인의 오만함 성찰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캐슬린 제이미의 산문집 <표면으로 떠오르기>가 출간됐다. ⓒ 스코틀랜드 정부

표면으로 떠오르기

캐슬린 제이미 지음 |고정아 옮김 |빛소굴 |272쪽 |1만8500원

알래스카주 퀴나하크 마을은 서쪽 해안의 북위 60도선 바로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퀴나하크 마을에는 에스키모족으로 알려진 유피크족이 살고 있다. 기후위기로 해수면이 빠르게 상승하자 이곳의 툰드라는 빠르게 부식 중이다. 매일 흙덩이와 초목이 모래밭으로 떨어져 바다에 휩쓸려 나간다. 영구동토층마저 녹아 땅 자체가 버티지를 못하고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 이 툰드라가 훼손되면서 뜻밖에 땅 속에 묻혀 있던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럽인들이 이곳에 오기 전인 500년 전, 수렵채집으로 자급자족하며 아무 문제 없이 살았던 과거 유피크족의 흔적이다.

<표면으로 떠오르기>는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캐슬린 제이미의 산문집이다. 14편의 산문이 실려 있는데, 책의 절반 이상이 알래스카와 스코틀랜드에서 저자가 아마추어 고고학자로 직접 유물 발굴에 참여한 경험을 담고 있다. 퀴나하크처럼 스코틀랜드의 링크스 오브 놀틀랜드에서도 기후위기로 생각지도 못한 유적지가 발굴됐다. 기상이변으로 수천 년 동안 서 있던 모래 언덕이 바람에 무너지고 식생이 사라지면서 그 밑에 있던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의 거주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부식은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관찰되고 있어요. 이 유적지는 5000년 전의 것이고, 그 세월 동안 지금 같은 노출은 피할 수 있었어요. 이런 일은, 고고학에 아주 큰 의미이지만 우리 인류 전체에도 마찬가지에요.”

한때 강력했지만 멸망한 문명의 흔적이 기후위기로 인해 그 모습을 드러낸 현실은 상징적이면서 역설적이다. 오만한 현대문명에 자연이 전하는 경고의 메시지처럼 여겨지면서 한편으로는 과거 유물들을 통해 자연과 공존했던 과거 인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같이 중층적인 유물 발굴의 과정과 의미를 흘러가는 사유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오늘날의 문명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기도 한다.

“시간은 나선형이다. 출발한 곳으로 돌아온다. (신석기 시대의) 돌함은 다시 발견되지만 그 사이에 5000년이 흘렀다. 이제 수십억 명이 된 우리는 실시간으로 전 세계와 통신을 주고받는 메가시티를 건설하고 미지의 해변으로 우주선을 쏘아보낸다. 우리는 80세, 90세, 100세가 되도록 산다! …하지만 수백만명이 가난에 시달린다. 어떤 이들은 높은 벽을 세우고 미사일을 만든다. 해수면은 오르고 폭풍이 밀려든다. 우리는 플라스틱과 쓰레기로 이루어진 우리의 지층이 부끄러워진다.”

<표면으로 떠오르기>. 빛소굴 제공

책은 쉽게 읽히지 않는 편이다. 저자는 알래스카와 스코틀랜드의 자연 풍경들, 들풀 하나 돌멩이 하나까지도 세밀하게 관찰하고 묘사한다. 국내와는 지리적 차이가 있는 풍경과 자연이기에 읽는 이의 머릿속엔 그 이미지가 선뜻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날아가는 수리 한 마리, 고도에 따라 달라지는 식생, 벌의 움직임 등을 좇는 저자의 시선은 낯선 풍경에 대한 단순한 감탄이 아니라 이제는 다 끊어져버린 자연과 인간의 연결고리를 다시 이으려는 집요한 응시처럼 여겨진다.

“내 오른 무릎 옆의 풀대가 거미줄로 묶여 있는 것을 어떻게 못 봤을까? 연노란색 벌 한 마리가 분홍바늘꽃에 들어간 것은 그야말로 사건이었다.”

“그때쯤이면 풀들의 모습이 너무 생생해서 나는 거의 그 맛이 느껴질 정도였다. 겨우 한 시간 동안의 관찰로 이렇게 되었다면 1년, 평생, 1000년은 어떨까? 사람이 한 집단 전체가 얼마나 자연에 조율될 수 있을까?”

산업화 이후, 특히 기후위기에 직면한 지금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묻는 질문들은 수없이 반복돼 제기돼 왔다. 저자는 유물 발굴을 하며 과거 인류의 삶의 모습을 상상하고 과거의 자연과의 관계를 그리워한다. “당신은 겨울밤의 별들을 알고, 초록빛 오로라, 부활의 동지를 안다. 자정에도 밖을 돌아다니며 바다 위의 빛을 볼 수 있는 한 여름의 긴 석양도 안다.” 그 같은 삶의 모습은 시간의 거리만큼 까마득하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낭만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편 작가는 이렇게도 말한다. “우리는 모두 안다. 이렇게 살 수 없지만, 지난날로 돌아갈 수도 없다. 돌쟁기를 쓰고 일찍 죽던 지난 날로 돌아갈 수 없다.” 그저 흘러가듯 이어진 그의 글들은 당연히 어떤 이정표를 제시해주지 않는다. 다만 자연에서 벼려진 그의 감각들을 따라가다보면 우리가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았던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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