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문화유산연구원·양주시립 회암사지박물관, 업무약정 체결…“유물 연구·홍보 등 협력”

경기 양주시 ‘양주 회암사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관련 문화유산 연구가 본걱화된다. 사진은 회암사지에 있는 ‘무학대사 탑’(보물)과 ‘무학대사 탑 앞 석등’(보물)의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경기 양주시의 ‘양주 회암사지’ 출토 유물 등 관련 문화유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된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라 있는 회암사지를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한 핵심 작업의 하나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양주시립 회암사지박물관과 ‘양주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중요 문화유산에 대한 공동 연구와 양측의 교류 활성화를 위한 업무 약정을 체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양측이 맺은 약정의 주요 내용은 회암사지 출토 문화유산의 과학적 분석과 해석을 위한 학제적 연구, 연구 성과를 담은 책자 발간과 학술대회 개최, 연구 성과의 홍보 및 공동 활용 등이다. 양측은 업무 약정을 통해 지난 202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록된 회암사지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 등을 확인한다는 계획이다. 또 연구 성과를 담은 책자 발간, 학술대회 개최 등을 통해 회암사지의 가치를 널리 알린다는 계획이다.

조선 전기 국내 최대 규모의 사찰로 고려~조선시대 유적, 유물이 남아 있는 ‘양주 회암사지’(사적) 전경. 양주시 제공

사적으로 지정돼 있는 ‘양주 회암사지’는 고려 중기부터 조선 중기까지 번창한 왕실 사찰인 회암사 터다. 고려 충숙왕 재위 당시에 인도 출신 승려인 지공이 사찰이 있었던 터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지공의 제자인 나옹선사, 나옹선사의 제자인 무학대사 등의 스님들이 머무르기도 했다.

특히 조선 초기에는 전국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다고 할 정도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왕실의 후원 등으로도 유명하다. 이성계는 조선 건국에 큰 역할을 한 무학대사를 회암사에 머무르게 했고, 왕위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이곳에서 수도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양주 회암사지’ 발굴조사에서 나온 다양한 형태의 불교 공예품인 장신구(영락). 양주시립 회암사지박물관 제공

회암사지는 1990년대 부터 최근까지 모두 13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발굴조사에서는 대규모 건물터를 비롯해 무려 70여 동에 이르는 건물터가 확인됐다. 또 불상을 비롯해 각종 공예·장신구 등 불교 미술품, 최고 권위의 상징인 청기와, 백자 같은 도자류 등 다양한 유물들도 확인됐다.

회암사지에는 ‘무학대사 탑’(보물), 쌍사자 조각으로 잘 알려진 ‘무학대사 탑 앞 쌍사자 석등’(보물), ‘회암사지 사리탑’(보물)을 비롯한 승탑과 석등, 비석, 건물 초석 같은 여러 문화유산들이 있다. 또 나옹선사의 행적을 새긴 고려시대 비석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보물)가 있던 터 등도 남아 있다.

회암사지와 관련된 이같은 고려 말~조선 전기의 주요 유물과 유적은 14세기 동아시아에서 크게 성행한 불교 선종문화의 번영과 확산, 선종의 수행 전통과 사찰의 공간구성 체계 등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란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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