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박병규 기자] 고흥에서 장흥, 보성으로 이어지는 득량만(得糧灣). ‘얻을 득’(得)에 ‘양식 량’(糧)을 쓴 득량만은 지명 그대로 양식을 얻는 땅과 바다를 품은 곳이다. 드넓은 득량만 바다와 갯벌은 철마다 다양한 산물을 내어주어 넓은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곳간이 된다. 청정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득량만 사람들의 삶이 담긴 밥상을 소개한다
■ 황금바다의 추억 - 전라남도 고흥군 득량도
전남 고흥, 장흥, 보성을 품고 내륙에 깊숙이 자리 잡은 득량만. 그 한복판에 홀로 떠 있는 작은 섬이 득량도다. 크기는 작지만, 땅이 비옥하고 물도 풍부한 득량도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산에 성을 쌓고 식량을 비축해 놓은 곳이라 해서 ‘얻을 득’(得)에 ‘양식 량’(糧), 득량(得糧)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나지막한 산을 사이에 두고 2개 마을이 있는데, 그중 관청이 있던 자리라 해서 이름이 붙은 관청마을. 이곳에서 나고 자라며 평생을 어부로 살아온 김연배 씨(72세)와 동갑내기 친구들은 은퇴 후 고향 섬마을로 돌아와 봄이면 나물을 뜯고,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득량만은 고기들의 산란지이자 은신처이며 오염을 막아주는 잘피의 서식지로 철마다 많은 고기들이 잡히는 황금어장으로 손꼽힌다. 바다에서 갑오징어와 도다리가 봄소식을 전하고, 갯벌에는 산파래와 돌김에 굴까지. 몸만 부지런하면 언제든 먹을거리가 생기는 풍요로운 섬이 바로 득량도다.
오징어계의 갑이라 부를 만큼 맛이 좋은 갑오징어에 향긋한 봄미나리를 넣어 새콤달콤 무친 갑오징어미나리무침, 싱싱한 생김과 굴을 덖어낸 김굴덖음과 갈색의 산파래를 득량도 사람들만의 방식으로 양념에 버무려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아 구워낸 산파래호롱구이까지. 땅과 바다를 오가며 사느라 몸은 고단했지만, 삶의 울타리가 되어준 득량만에 기대어 살아온 섬사람들의 마음 넉넉한 밥상을 만난다.
■ 키조개, 득량만이 품어 키운 귀한 선물 - 전라남도 장흥군
4월과 5월, 득량만 갯벌이 부드러워지면 바닷속에도 꽃이 핀다. 장흥군 안양면 수문리, 날만 좋으면 매일 바닷속을 누비며 사는 잠수부들. 득량만이 품은 최고의 선물, 키조개 때문이다. 산소 탱크와 연결된 호스로 숨을 쉬며 갯벌에 묻힌 키조개를 일일이 손으로 캐 그물망에 담아 배 위로 올려보낸다. 곡식을 골라내는 도구인 ‘키’를 닮았다 해서 이름이 붙은 대형 조개, 산란을 앞두고 속살이 꽉 찰 때라 지금이 제일 맛이 좋을 때다.
펄이 찰지고 영양이 풍부한 득량만은 키조개를 키우기 좋은 조건이다. 20여 년 전, 처음 키조개 종패를 이식해 키우기 시작한 장흥 안양면 수문리는 키조개 하나로 전국에 이름을 알린 곳이다. 키조개 양식의 산증인인 장영복 씨(70세)와 3대째 키조개 전문 음식점을 이어가고 있는 조카 장하다 씨(44세) 부부는 키조개 하나로 의기투합한 가족.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할머니의 손맛을 잇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장하다 씨는 집안의 비법인 막걸리 식초를 직접 만들고, 큰아버지인 장영복 씨가 캐온 신선한 키조개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고 있다.
크고 부드러운 관자살에 쫄깃한 식감이 일품인 날개살과 꼭지살까지. 부위별로 색다른 맛을 즐기는 키조개구이와, 막걸리 식초의 깊고 은은한 맛과 향이 살아있는 키조개관자초무침, 키조개 자체의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뽀얗게 우러난 키조개탕에 가족들의 별미인 키조개전까지, 키조개 하나로 풍요로운 밥상이 차려진다. 오랜 삶의 터전이었고, 돌아온 이들을 품어 안아주는 영원한 고향인 득량만에서 그 바다가 내어준 것들을 보물처럼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키조개 가족의 밥상을 만난다.
■ 어머니의 품 같은 득량만에 기대어 살다 - 전라남도 고흥군
득량만은 이름처럼 먹거리도 풍요롭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청준 한승원 이승우 송기숙 등 당대 이름난 작가들을 배출한 문학의 고향이고, 오랜 시간 바다를 메어 땅으로 바꾼 대규모 간척의 역사를 간직한 변화의 땅이기도 하다. 그 땅이 사람을 부르고 머물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바쁜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남편의 고향인 고흥으로 내려온 김종인 씨(61세)와 딸 장혜윤 씨(27세) 모녀도 그중 하나다.
자연과 함께 살며 농사짓는 꿈을 이루기 위해 땅 좋고 물 좋고 바람 좋은 득량만 가까이에 터를 잡고 산 지 10년째. 농사는 기본, 오래된 집을 직접 수리하는 일까지. 못하는 게 없는 엄마는 농업대를 졸업하고 4년째 유기농법으로 농사 짓는 딸에게 농사도, 요리도 가르쳐주는 스승이다. 음식에 관심이 많은 모녀에게 득량만은 좋은 식재료를 언제든 내어주는 최고의 장소다. 물이 빠진 갯벌엔 새꼬막과 고둥이 지천에 있고, 땅에는 열무가 먹기 좋게 자랐다.
풋고추와 보리죽, 그리고 간장으로 맛을 더한 고흥식 열무김치, 진달래꽃 필 무렵 올라온다는 낙지를 애호박과 함께 무친 보양식 별미에 중하 새우를 쌀뜨물과 소금, 마늘, 고춧가루에 버무려 일주일 정도 삭힌 다음 무쳐 먹는 시어머니 표 새우장까지. 음식 솜씨 좋은 엄마의 손맛을 이어가는 딸과 그 곁에서 묵묵히 모녀를 지켜주는 아빠의 즐거운 시골살이가 맛있게 펼쳐진다. 어머니의 품처럼 모든 걸 품어 안아주는 득량만, 그곳에서 매일 매일 행복을 찾아가는 가족이 차려내는 득량만의 넉넉함을 담은 밥상을 만난다.
배우 최불암이 진행하는 KBS 1TV '한국인의 밥상'은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40분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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