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합류’ 여성 실화 바탕

우크라전 이후 예술 탄압

테러리즘 정당화 혐의로 기소된 러시아 극작가 스베틀라나 페트리추크(왼쪽)와 연출가 예브게냐 베르코비치가 8일(현지시간) 모스크바 군사법정에 앉아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에서 테러단체를 소재로 한 연극을 무대에 올린 유명 극작가와 연출가에게 중형이 선고돼 논란이 일고 있다. 러시아 당국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반전 여론을 통제하는 한편 표현의 자유 및 문화예술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 군사법원은 8일(현지시간) 비공개 재판에서 테러리즘 정당화 혐의로 기소된 극작가 스베틀라나 페트리추크(44)와 연출가 예브게냐 베르코비치(39)에게 각각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연극 <용감한 매 피니스트>의 극본을 쓰고 연출한 이들로, 지난해 5월 구속돼 재판을 받아왔다.

2020년 초연된 이 연극은 동명의 고전 동화를 각색한 것으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조직원들과 결혼해 IS에 합류한 옛 소련권 국가 출신 여성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연극의 주인공은 자신을 유혹한 IS 대원에게 환멸과 배신감을 느낀 뒤 러시아로 되돌아오지만, 결국 테러리스트로 지목돼 수감된다. 극단주의자들의 기만과 타락, 이로 인해 파괴되는 타인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IS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과 테러리즘을 옹호하는 선전을 했다고 주장했다. 연극이 IS에 모집된 여성들을 낭만적으로 묘사했다고도 주장했다. 피고인들은 해당 연극이 명백히 테러리즘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반박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러시아 극작가 미하일 두르넨코프는 “<전쟁과 평화>를 쓴 톨스토이가 ‘전쟁 선동 혐의’로 재판을 받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러시아 예술계에선 과거 정부기관으로부터 제작비 지원을 받는 등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작품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변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탄압받게 됐다는 말이 나왔다. 해당 연극은 2020년 초연한 후 러시아 최고 권위 연극상인 ‘골든마스크’ 상을 두 차례 수상했는데, 골든마스크 상은 러시아 문화부와 모스크바시에서 후원한다.

일각에선 이번 재판이 베르코비치가 과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활동을 한 것과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는 전쟁 이후 국내 반전 목소리를 처벌하고 표현의 자유 역시 제한해왔으나, 예술작품에 이런 잣대를 적용해 재판에 넘기고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은 옛소련 해체 이후 처음이라고 문화계 인사들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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