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팔레스타인 광장에서 이란 시민들이 하마스 수장 이스마일 하니야 피살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오른쪽 두 번째)와 하니야가 담긴 포스터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최고 정치 지도자가 암살돼 이란이 ‘복수’를 천명한 가운데 이란이 어떤 방식으로 이스라엘에 대응할지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특히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측간 전면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메네이 “전쟁 확대, 미국 공격 방어 계획도 준비하라”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하마스 정치국 최고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이날 새벽 피살된 후 오전에 긴급 소집된 이란 최고 국가안보회의에서 하메네이가 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하라고 명령했다고 이란 정부 관계자 3명을 인용해 보도했다. 하메네이는 전쟁이 확대돼 이스라엘이나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에 대비한 방어 계획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란 관리들은 이스라엘 텔아비브와 하이파 인근의 군사 목표물에 대한 드론 및 미사일 복합 공격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예멘, 시리아, 이라크 등 다른 전선에서 공동 공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멘의 후티 반군, 시리아 정부군,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등 이란의 지원을 받아온 이른바 ‘저항의 축’이 동시 공격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이 경우 중동 전역으로 전쟁이 확대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다만 이란이 긴장 고조를 피하기 위해 민간인 목표물에 대한 공격을 피하는 등 공격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

30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수장 이스마일 하니야(가운데)가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오른쪽),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 단체 지도자 지아드 나칼레와 만나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앞서 하니야는 이란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취임식 다음 날인 이날 새벽 2시 테헤란의 혁명수비대 게스트하우스에서 ‘공중 유도 발사체’의 공격을 받아 피살됐다. 하메네이는 공개 성명에서 이란 영토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복수가 우리의 의무”라고 밝혔다. 하메네이는 1일 테헤란에서 치러지는 하니야 장례식 추모 기도를 직접 인도할 예정이다.

하니야 암살, 이란 내 이란인들이 도왔나

이란에선 소수의 고위 보안 관리만이 하니야가 머물고 있는 곳을 알고 있었을 거라는 점에서 정보 유출 우려와 최고지도자 안전 보장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카일리 무어-길버트 맥쿼리대 연구원은 포린폴리시(FP)에 기고한 글에서 “하니야의 암살 시기와 장소 모두 이란에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다. 이란 내부의 이란인들이 거의 확실히 도움을 주었다는 점에서 이란 정권은 걱정스러울 것”이라며 “하니야가 머물던 곳을 강타한 공중 발사체도 현지에서 왔을 수 있고, 이런 드론은 이란 국경 너머 보다 국내에서 탐지되지 않고 발사하기 더 쉽다”고 분석했다. 그는 과거 이란 핵 과학자 표적 살해 등도 이스라엘 정보 기관인 모사드를 대신해 활동하는 현지 네트워크에 기인했다고도 지적했다.

NYT는 “이란에서 하니야의 암살은 굴욕적인 보안 침해”라며 “분석가들은 이란이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나 쿠드스군 사령관 이스마일 카니 장군 같은 이들을 살해하려는 이스라엘을 억제시키기 위해서라도 보복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위기그룹의 알리 바에즈 이란 국장은 “이란은 이스라엘의 추가 공격을 저지하고 주권을 수호하며 지역 파트너들의 눈에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보복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고 믿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마일 하니야가 사망한 장소로 추정되는 곳. 뉴욕타임스는 ″텔레그램에 유포되고 있는 이 사진 속 손상된 건물이 하니야가 살해된 장소라고 이미지를 공유한 이란 관리가 밝혔다″고 전했다. 사진 클래쉬리포트 X 캡처

“추가 공격 저지 위해서라도 보복”…헤즈볼라 대응은 

하마스보다 훨씬 전력이 강한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어떻게 대응할 지도 향후 상황 전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헤즈볼라는 최고위 지휘관 푸아드 슈크르가 이스라엘의 지난달 30일 베이루트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이란 매체는 이 공습으로 슈크르의 옆집에 살던 이란의 군사고문 밀라드 비디도 사망했다고 이날 전했다.

헤즈볼라는 수장인 하산 나스랄라가 1일 슈쿠르의 장례식에서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공습 등에 대해 발언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나스랄라가 미국 중재자를 통해 이스라엘에 ‘레바논 수도(베이루트)에 대한 공격이 레드라인을 넘어 텔아비브에 대한 공격을 촉발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백승훈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헤즈볼라는 하마스보다 7배 많은 비대칭 전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이스라엘이 파악하고 있다”며 “이란이 이런 헤즈볼라를 이용해 텔아비브를 공격하면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고 말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헤즈볼라는 이란 대리 조직 중 이란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며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충돌이 확전된다면 이란도 개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30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서 한 남자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을 조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네타냐후 “우린 모두 시나리오에 준비”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 정부는 이날까지 하니야 피살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확인도, 부인도 않는 ‘NCND’ 입장을 유지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텔아비브에 있는 이스라엘군 본부에서 3시간에 걸친 내각 안보 회의를 마친 뒤 TV 연설에서 “이스라엘은 이란과 그의 축들과 실존적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으나, 하니야 피살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며칠 동안 이란의 주요 대리인 후티 반군, 하마스, 헤즈볼라에게 ‘엄청난 타격’(crushing blows)을 가했다고만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몇 주 전 우리는 가자지구에 있는 하마스 군사 지도자 모함마드 데이프를 공격했다. 또 (후티가 있는) 예멘 호데이다 항구를 공격했고 어제는 헤즈볼라 군사 지도자 푸아드 슈크르를 공격했다”며 “베이루트 공격 이후 사방에서 위협이 들리고 있다. 우리는 모든 시나리오에 준비돼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1일 한국 대통령실은 ‘중동상황 관련 안보·경제 합동 점검회의’를 열어 현지 교민 안전 강구 방안과 유사시 교민 철수 대책을 검토해 향후 상황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3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팔레스타인 광장에서 열린 이스마일 하니야 사망 규탄 시위에서 이란 시위자들이 이란, 팔레스타인,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깃발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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