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체구의 고등학교 1학년 태우(가명)를 만났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공부도 안 되고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며 스스로 찾아온 아이다. 반갑다고 인사하면서 “상담실에 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팔씨름”이라고 말하며 태우의 손을 잡았다. 태우가 엄살을 부리며 힘이 없다고 했다. 이어서 ‘장애물 통과하기’ 모험놀이 2단계 활동을 했다. 한 사람이 안대를 한 다른 사람을 안내해 장애물을 통과해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활동이다. 태우는 나를 세심하게 안내하면서 재미있어 했다.

그렇게 한바탕 몸놀이를 한 뒤 상담 테이블로 이동했다. 먼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종이에 쓰도록 했다. 태우는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라고 썼다. 그 문장을 눈을 감고 여러 번 반복해서 같이 읽었다. 그런 다음 느껴지는 감정을 써 보라고 했다. ‘불안하고 공허하다’라고 A4 용지 한쪽에 작게 썼다. 태우와 살면서 불안하고 공허하다고 느꼈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중학교 때부터 엄마가 진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불안했다고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성적이 떨어지면서 나중에 무엇을 해야 할지 걱정이 많이 된다고 했다. 공부를 정말 잘 하고 싶은데 집중이 안 된다고 말했다.

태우와 불안한 상황을 감정 문장으로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비록 공부를 안 할 때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를 온전히 마음속 깊이 사랑합니다’라고 만든 뒤 다섯번 반복해서 읽었다. 그런 다음 기분을 물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고 했다. 마음이 편안해지긴 했지만, 성적이 떨어져 엄마에게 혼났던 일, 엄마가 남의 집 아이와 비교해 속상했던 일들이 스쳐지나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정말 공부를 잘하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는 좋은 분이지만, 대하기 힘든 상대라고 말했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태우에게 성공이 보장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되면 누가 가장 좋아 할 것 같은지 물었다. 엄마라고 했다.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오늘부터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 물었다. 수학이 최소 2등급은 되어야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학 공부를 당장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상담을 마무리하면서 태우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고, 나는 “그렇게 생각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교실에는 태우 같은 아이들이 참 많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아이들에게 무조건 ‘하늘이 도와 성공이 보장된다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묻는다. 무엇을 해야 할지 단초를 찾기 위해서이다. 이 질문은 의외로 아주 강력하다.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불안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멈추게 하고, 마치 프리즘을 통해 흐르는 빛과 같은 밝은 얼굴을 볼 수 있다. 또 보장된다고 가정한 일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자신감도 갖게 된다. 이 느낌을 경험한 아이들은 중간에 어려움이 있어도 잘 견디며 앞으로 나아갔다.

당신은 성공이 보장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태우는 수학 선생님, 나는 히트곡 있는 가수가 되고 싶다. <끝>

방승호 모험상담연구소 소장(hoho617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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