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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환 열사 대책위’와 공공운수노조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택시발전법 개정안을 규탄하고 있다. 김송이 기자

“아버지는 이미 있는 법을 지켜달라고 마지막까지 외치며 돌아가셨는데 이젠 있는 법마저 무력화하겠다는 게 말이 되나요.”

지난해 10월 택시 노동자들의 완전월급제 시행 등을 요구하며 분신해 숨진 택시기사 고 방영환씨의 딸 방희원씨(31)는 최근 국회에서 택시발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와 박탈감을 느꼈다고 했다. 아버지가 택시기사로 안정적으로 일하기 위해 염원했던 월급제법이 그 취지와 달리 개정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방씨는 17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노동자를 위한 법안이 개정돼도 부족한데 사업주에게만 유리하게 법안이 바뀌고 있다”며 “결국 아빠 같은 사람이 또 나오고, 돌아가신 아빠의 뜻은 끝내 이뤄지지 못하고 염원으로만 남게 될까 속상하다”고 말했다.

이날 ‘방영환 열사 대책위원회’와 공공운수노조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십년 만에 노·사·민·정 대타협으로 통과된 택시월급제가 제대로 시행도 못 해보고 사실상 폐기될 위험에 처했다”며 택시발전법 개정안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모두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5일 발의한 택시발전법 개정안이 법안 취지를 무력화한다고 입을 모았다. 개정안은 택시 노동자의 소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하도록 정한 제11조의2에 ‘근로자 대표가 합의한 경우에는 소정근로시간을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를 추가하는 내용을 담았다.

현행 택시발전법은 택시 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안정적인 소득 보장을 위해 소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정하도록 한다. 과거 택시 회사들이 노동자의 실제 운행 시간과 근무 형태에는 변화가 없음에도 소정근로시간만 형식적으로 줄여 고정급을 적게 주고도 최저임금 위반을 피해 가는 꼼수를 부리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다. 대법원도 2019년 소정근로시간만을 형식적으로 단축해 최저임금 위반을 피하려 한 택시회사의 취업규칙이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에 불공정 계약을 방지하고 최저임금 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개정안이 2021년 서울시에서 시행됐고 오는 8월부터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었다.

김 의원의 개정안대로면 앞으로는 노사가 합의하면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노조는 택시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됐던 택시발전법의 입법 취지가 훼손된다고 주장한다.

이재근 노동당 대표는 “방 열사 등 노동자들이 택시월급제라는 최소한의 법이라도 지키라고 주장하자 택시 사업주들은 정당한 투쟁도 폭행과 왕따로 가로막아왔다”라며 “정치인들은 택시 사업주들의 불법 행위를 방관해 왔음에도 반성은커녕 택시월급제에 단서 조항을 달아서 사실상 무력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삼형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정책위원장은 “택시 사업주에게 소정근로시간을 맡기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으로 애초 국회에서 월급제 법안을 만들었던 것”이라며 “단서 조항 같은 문제 때문에 이 법을 만들었는데 다시 단서 조항을 달아 개정하면 이 법은 있으나 마나 한 법이 돼 택시 노동 현장이 30년 전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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