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 지금은 이상하게만 들리는 이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때가 있었다. 개근이 성실의 지표이자, 자랑이던 시대였다. 12년 개근도 그리 드물지만은 않았고, 자퇴란 동네에서 껌 좀 씹는다는 불량 학생들이나 하는 거였다. 학교 밖 청소년과 가정 밖 청소년을 같은 의미로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요즘의 학교는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 개근상이 그 모습을 감추는 추세다.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개근하는 학생이 드물어진 데다 개근의 의미가 퇴색된 게 그 이유라고 한다. 정해진 날마다 빠짐없이 학교에 간다는, 아주 당연하게 여겨지던 학생의 본분이 조금씩 흐려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청소년들 사이에 ‘자퇴각’이라는 유행어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자퇴하고 싶다”라는 말은 가벼운 푸념처럼 너무나 흔하게 들려온다. 요즘에는 학교마다 자퇴생이 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고 그만큼 진지하게 자퇴를 고려하는 학생도 많다. ‘요즘 애들’ 사이에서는 자퇴라는 단어가 무거움이나 무서움을 내포하지 않게 된 지 꽤 오래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학부모와 자녀 사이에 좁히기 힘든 간극을 불러왔다. 그건 바로, ‘학교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견해차이다. 학부모들은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며 상담을 요청하지만, 청소년들은 “부모님이 자퇴 허락 안 해주는데 설득하는 방법 좀요!” 같은 메시지를 보낸다.

과거에는 청소년들이 자퇴하는 건 모두 학교폭력 혹은 부적응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러나 학교 밖 청소년 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이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확연히 실감할 수 있다. 통계적으로 왜 자퇴했냐는 질문에 ‘학교가 무의미해서’라고 답하는 청소년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청소년들이 말하는 무의미함을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일명 ‘정시 몰빵’을 위한 입시 전략형 자퇴라는 견해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입시 전략형 자퇴가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게 전부라고 해석하면 곤란하다. 학교가 무의미해서 자퇴했다는 답변이 1위를 차지한 건 비단 몇년 사이의 일이 아니라 학교 밖 청소년 실태조사가 실시된 이래 한결같은 수치이기 때문이다.


수년간 학교 밖 청소년 관련 정책을 만들고 자문해 온 전문가로서 확언하자면, 이러한 통계 결과는 ‘학교는 내 인생에 필수적인 존재가 아니다’라는 청소년들의 외침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학교 밖 청소년을 학교 부적응자와 전략적 입시생으로 양분화해서 바라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5만2981명의 학생이 학교를 떠났다. 전체 학교 밖 청소년 수는 약 17만명에 이르리라 예측되곤 하지만, 학교에 아예 적을 두지 않은 미진학 청소년 등의 변수를 고려해 보면 이보다 더 많은 수가 학교 밖에서 살아가고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학령인구는 빠르게 감소하는데, 학교를 떠나는 청소년의 수는 그리 호락호락하게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개근상이 사라지고 학교가 필수재가 아니게 된 세상에서, 학교 밖 청소년은 점점 소수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편견도 이에 발맞춰 자취를 감추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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