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 형제자매의 학교생활에서 고민되는 부분 중 하나가 담임에게 형제자매의 장애 여부를 공개하느냐 마느냐이다. 딸이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땐 처음부터 아들의 장애 여부를 밝혔다. 딸의 전반적인 상황을 알고 있어야 담임이 딸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다 처음부터 말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초등학교 3학년 초창기이던 어느 날, 딸이 수업 중에 짝(남학생)과 다투는 일이 생겼다. 딸의 언성이 높아진 듯했다. 하교 후 담임에게 전화를 받았다. 상황을 설명하던 담임이 말했다.

“아이가 소리 지르는 것을 보니 장애인 동생으로 인해 생긴 분노가 마음속에 있는 것 같아요.” 싸인펜으로 자기 책에 낙서하려는 남학생에게 그만하라고 했을 뿐이다. 처음엔 조용히 그만하라고 만류했는데 일곱 번, 여덞 번 행동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자 그만하라고 크게 소리를 질렀을 뿐이다. 그러자 곧장 ‘비장애 형제자매의 응축된 분노’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어른은 어른이구나. 몇십 년에 걸쳐 내면에 굳건히 쌓인 장애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그 편견과 고정관념이 이런 방식으로 딸에게 나타나는구나 싶었다.

다음해엔 딸의 담임에게 아들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어른들의 편견으로 딸을 ‘대상화의 틀’에 갇히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다 2학기 상담 때 처음으로 아들의 장애 여부를 밝혔다. 딸이 딸 자체로 온전히 받아들여질 시간을 충분히 준 다음에.

담임은 깜짝 놀랐다. “전혀 그런 분위기 못 느꼈어요!”

당연한 일이다. 비장애 형제자매라고 남들하고 다른 분위기가 있는 게 아니다. 그냥 똑같은 사람이다. 집에 장애인 가족이 있으면 남들과 다른 무언가(주로 부정적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어른들의 왜곡된 사고다.

중학생인 지금은 처음부터 딸의 담임에게 아들의 장애 여부를 밝힌다. 딸도 머리가 커지면서 어른들로부터 행해지는 ‘대상화의 틀’에 그냥 갇혀 있진 않고 자기 변론을 할 만한 힘이 길러진 덕이다. 또 1년에 두세 번 정도는 동생으로 인해 지각이나 조퇴를 해야 할 상황이 발생하는데 미리 양해를 구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새 학기도 한 달이 지났다. 딸은 그동안 반 친구들에게 동생이 발달장애인임을 벌써 밝혔다고 한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동생의 장애가 공개된 환경에서 살아온 덕이 클 것이다. 딸에게 직접 물어보니 “엄마한테 세뇌당해서?”라며 동생의 장애를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이유를 말한다.

비장애 형제자매 입장에선 형제자매의 장애가 공개되면 편한 게 사실이다. 친구들이 저마다 동생 욕, 언니 욕을 하며 유대감을 다질 때 그 속에 함께 껴서 소속감도 느끼고 형제자매로부터 쌓인 스트레스도 풀 수 있다. 오히려 친구들은 편견 없이 ‘친구 동생의 장애’를 받아들인다. 문제는 어른이다. 어른들의 단단한 장애인식이다. 어른들의 왜곡된 고정관념과 편견이 비장애 형제자매에게 장애인 형제자매를 ‘삶의 장애물’로 인식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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