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소셜 서바이벌 ‘더 인플루언서’ 공식 티저 예고편 갈무리. 사진=넷플릭스 코리아 공식 유튜브

“인플루언서는 멸칭이에요.” 영국의 트렌드 분석가 올리비아 얄롭이 쓴 책 ‘인플루언서 탐구’에서 550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미용 인플루언서가 한 말이다. 사전적 정의로 인플루언서(influencer)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오늘날에 와서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한 ‘팔이피플’(‘물건을 파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등으로 격하되기도 했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처음으로 만든 소셜 서바이벌 ‘더 인플루언서’에 나오는 이들은 인플루언서를 자청하는 이들이다. “팔 수 있는 모든 걸 팔아야 한다”(빠니보틀), “벗으라면 벗고 짖으라면 짖겠습니다”(창현)라는 말처럼 이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셀링(selling)하는 인물로 스스로를 정체화한다. 이유는? ‘더 인플루언서’의 세계관이 그들을 그렇게 추동하기 때문이다. ‘팔이피플’ 또는 ‘어그로꾼’이라는 멸칭의 세계로.

‘더 인플루언서’의 프로그램 설명은 ‘영향력이 곧 몸값이 되는 대한민국 인플루언서 77인 중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해 경쟁하는 소셜 생존 서바이벌 예능’이다. 팔로워 숫자는 곧 몸값이며, ‘영향력’은 클릭 수로 환산되는 ‘화제성’이다. 화제성을 집계하는 데에 사람들 반응의 구체적 내용 같은 정성적인 가치는 불필요하다. ‘싫어요’는 ‘좋아요’와 같은 가치를 지니며, 플레이어들의 활동은 사람들 시선이 머문 시간, 댓글 수, 언급량 등 오로지 정량적인 수치로만 집계된다.

▲ 넷플릭스 소셜 서바이벌 ‘더 인플루언서’ 공식 티저 예고편 갈무리. 사진=넷플릭스 코리아 공식 유튜브

이 때문에 출연진들은 다만 ‘어그로’(관심 끌기)에 골몰하게 된다. 서로에게 ‘좋아요’, ‘싫어요’를 15표씩 행사하는 1라운드 미션에서 진용진은 ‘원조 인플루언서’인 배우 장근석이 “숏폼 기반 인플루언서들은 과대평가됐다”고 말했다며 허위 사실 유포로 사람들을 선동한다. 2라운드 라이브 방송 미션에서 1세대 유튜버인 대도서관은 ‘중대발표’를 선언한다. 그러나 실상 내용은 팬덤명 바꾸기, “연말에는 연애를 할 수도 있다”는 식의 소소한 가십이었다. 이를 두고 “몇 개 중대냐?” 같은 비아냥 섞인 댓글이 날아든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프로그램은 이렇듯 각종 ‘어그로’의 기술을 출연진들이 서로 서로 벤치마킹해가며 비슷한 장면을 보여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더 인플루언서’는 온라인 시장에서 더욱 물화된 여성의 몸과 이를 둘러싼 산업을 적극 부각시켰다. 라이브 방송 미션에서 성인 모델인 표은지는 속옷 차림으로 등장했고, 사람들 시선을 가장 오래 붙잡아 둘 한 장의 사진을 찍는 3라운드 미션에서 코스튬 플레이어 마이부와 아프리카TV BJ 과즙세연은 가슴을 클로즈업한 사진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그들 행동의 주체성 여부를 떠나 유독 여자의 몸만 적극적으로 돈이 되는 현실, 그리고 이를 집중 활용한 ‘더 인플루언서’의 연출에는 문제가 있다.

애초에 ‘여캠’은 남성에게 섹스 어필을 하는 여성 BJ를 뜻하지만 ‘남캠’이라는 말 속에 섹슈얼한 의미는 대체로 없는 것처럼, 온라인 시장에서 여성의 몸에 관한 성 상품화나 착취는 상시적으로 일어나지만 반대는 드문 것처럼 인플루언서는 철저히 젠더화된 세계다. 그래서 이를 화면에 옮길 때는, 특히나 ‘약육강식’의 질서로 중무장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는 보다 많은 고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전 세계 OTT 1위 플랫폼인 넷플릭스는 이를 그대로 답습하는 한편, 프로그램의 흥행 요소로 적극 활용한다. “나는 가슴을 안 보여줬어”라는 뷰티 크리에이터 이사배의 자조, “나도 여캠이었다”는 스트리머 뽀구미의 말에 출연진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실소 등은 ‘여성의 몸’이라는 자본주의적 무기를 활용하지 못하는 여성에 대한 동정처럼도 보였다. 그런 부조리한 ‘판’을 만들고 거듭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명백한 제작진의 오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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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소셜 서바이벌 ‘더 인플루언서’ 공식 티저 예고편 갈무리. 사진=넷플릭스 코리아 공식 유튜브

프로그램의 존재 의미를 계속해서 묻게 되는 것은 틱톡커, 라이브 스트리머, 유튜버 등 서로 다른 플랫폼에서 다른 형태로 활약하는 인플루언서들을 모아놓고 획일적인 가치를 요구하는 것에도 있다. 서로 다른 이들을 양적 기준으로 줄 세우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야말로 ‘인플루언서 올림픽’은 어째서 필요한가. 틱톡 팔로워 수만 2760만 명에 달해 ‘몸값’ 1등을 차지했던 틱톡커 시아지우의 반성처럼 인플루언서란 라이브 방송도 잘해야 하고, 심지어 파이널 라운드에서처럼 오프라인에서의 대면 행사까지 잘 해내야 할까. 여기에 더해 인플루언서가 여론 선동과 조작, 피드 사진 촬영, 소셜 미디어를 통한 댓글 동원, 메타 인지 능력까지 발군인 대기업이 선호할 법한 ‘육각형 인재’여야 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프로그램을 통해 많이 배웠다”는 출연자들의 소회가 덧없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인플루언서’가 말하는 인플루언서의 자격에 공감하기 어려운데, 이를 잘 해냈다는 자평이나 잘 못했다는 반성 모두 공허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되레 최종 우승을 차지한 오킹이 이후 코인 사기 의혹으로 활동을 중지하고, 우승 사실을 외부에 발설했다는 이유로 상금 3억원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 프로그램 최대치의 진정성으로 보였다. ‘더 인플루언서’는 미디어가 일련의 온라인 마케팅 시장을 재현할 때 무엇을 유의해야 하는지에 관한 실패한 교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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