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의료 현장에서 더 많은 진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된 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 등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고영미 기자] 지난 8일 기준 전공의 이탈이 92.9%에 달하는 가운데 일부 의대 교수들은 사직서를 제출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의대 증원' 정책을 밀고 나가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에 의존하는 현재 의료 체계 정상화 추진을 목표로 진료지원(PA) 간호사 법제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11일부터는 전국 지자체 공중보건의사 138명을 전국 20개 의료기관에 파견할 예정이다. 

정부, 면허 정지 절차에도 전공의 이탈 늘어 

전공의 이탈 등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계속되고 있는 10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야간·휴일 비상진료 안내문이 놓여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평일 야간 17시 30분부터 20시까지, 휴일 9시부터 12시까지 비상진료를 운영한다. 2024.3.10 [사진=연합뉴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와 '빅5' 병원 전공의 대표들이 지난달 16일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 결정을 밝힌 뒤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집단사직 후 진료개시(복귀)명령 등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돌아오지 않는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지난 5일부터 행정명령 사전통지서를 발송하며 면허정지 절차를 밟고 있다.

이르면 다음 주 초쯤 근무지 이탈 전공의 1만여명 모두에게 사전통지서가 발송 완료될 예정이며 '면허 정지 사전통지서'를 받은 전공의들은 25일까지 의견을 내야 한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8일 열린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관련법을 위반하면 1년 이하로 면허 자격을 정지할 수 있게 돼 있다"며 "비슷한 사례를 보면 통상 3개월 정도는 면허가 정지된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도 불구하고 이탈 전공의는 오히려 늘고 있다. 지난 8일 오전 11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 중 계약 포기 또는 근무지 이탈자는 92.9%에 달한다.

부산대병원은 전공의 246명 중 216명(87%)이 사직하고, 이달부터 출근이 예정됐던 전임의 27명 중 22명이 임용을 포기했다.

전북대병원, 원광대병원, 충북대병원, 전남대병원, 조선대병원, 경북대병원, 울산대병원, 제주대병원에서도 전공의 대다수가 현재까지 복귀하지 않고 있다.  강원과 대전·충남, 경기남부, 인천 지역에서도 전공의들 사이에 별다른 복귀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 상황이다.

대학병원 병상 가동률 급감‧비상경영 돌입 

이처럼 전공의 이탈이 계속되면서 병상 가동률이 급감하는 등 의료 차질도 발생하고 있다. 

충북대병원은 병상 가동률이 70%대에서 40%대로, 전북대병원은 수술실 가동률이 평소의 30∼50% 수준으로 급감했으며 제주대병원은 최근 병상 가동률이 30∼40%대에 머물고 있다.

인천 지역에서는 응급실 일반 병실의 28.0%, 격리 병상의 25.7%만 가동 중이다.

대전 을지대병원 응급실은 소아청소년과 진료와 호흡기내과 입원이 불가능하고, 대전성모병원 응급실은 이날 안과 진료를 보지 않는다고 공지했다.

전공의 사직으로 입원·진료 건수가 줄어든 대학병원 일부는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부산대병원은 전날 오후 비상경영체제 2단계를 선포했다. 부산대병원은 수술 건수와 병상 가동률 감소로 이번 달에만 100억원대 적자가 불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대병원은 휴가 사용 촉진과 무급휴가 도입, 연장근로 제한 등과 함께 병동 통합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강원도는 경영악화로 일부 병원에 임금체불이 우려되는 데 따라, 지역 대형병원 4곳에 재난관리기금 8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의대 교수들 “전공의‧학생 없는 교수 의미 없어”…사직 논의 

9일 오후 서울시내 한 식당에서 열린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비공개 총회를 마친 의대 교수들이 건물을 나오고 있다. 2024.3.9 [사진=연합뉴스]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를 풀기 위해 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대화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학별 의대 정원 배정과 이탈 전공의 처벌이 가시화하자 일부 의대 교수들은 사직을 통해 정부 압박에 나섰다.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들이 긴급총회를 열고 집단행동 여부 등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10일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에 따르면 이들은 11일 오후 5시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에서 각 병원 소속 교수들이 모인 가운데 총회를 진행한다.

비대위는 이 자리에서 대학의 의대 증원 신청과 전공의 사직 등 현 상황과 그간의 비대위 활동을 공유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한다.

특히 단체로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교수 집단행동에 대한 의견도 오갈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총회에서는 최근 집단행동과 관련해 비대위가 교수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도 공유될 것으로 보인다다.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서울의대 교수협 2기 비대위는 최근 이에 대한 설문조사를 끝내고 결과를 정리 중이다.

앞서 분당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는 자체 설문조사를 통해 설문자의 85%가 "전공의와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9일 40개 의대 중 33개 의대가 참여하는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또한 각 의대 대표들이 참여하는 회의를 열고 사직 문제를 논의했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은 정부의 2천명 증원 방침을 비판하며 “정부가 조건을 걸지 말고 전공의들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 회장은 “환자를 진료하는 게 의사의 가장 큰 소명이지만, 전공의와 학생이 없는 상황에서 교수의 의미는 무엇이겠느냐”라며 “사직하겠다는 교수님들이 제법 많이 계시다”라고 전했다. 

정부 “전공의 이탈로 문제 생기는 시스템 개선해야”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3.5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정부는 '2천명'이라는 의대증원 규모는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확고히 밝히면서 전공의 처우 개선이나 전공의에게 과의존하는 의료체계를 이참에 개편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성태윤 정책실장은 9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제시한 증원 규모인 2천 명에 대한 변화는 없다”고 일축하면서 "40개 대학에서 3401명 증원 요청이 들어왔는데, 2천 명이라는 숫자와 대학 여건을 고려해서 (의대별로) 분배 작업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 실장은 “(대형병원 등에서) 전공의 의존 체계를 정상화하는 게 매우 필요하다"라며 “전공의가 (의료 현장에서) 이탈했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시스템은 개선이 필요하다. 전문의 내지는 해당 병원에서 직접 일하는 분들로 체제를 개편하고 진료지원 간호사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10일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며 "지난달 1일 의료개혁 4대 과제를 발표한 이후 의료사고 특례법안을 공개하고 필수의료에 대한 건강보험 보상강화 방안과 전공의 처우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며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준비 태스크포스(TF)를 지난주에 가동해 대통령 직속 위원회 출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① 진료지원(PA) 간호사 법제화 추진

간호사가 의료 현장에서 더 많은 진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된 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가 이동하고 있다.2024.3.8 [사진=연합뉴스]

우선 정부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으로 발생한 의료 공백 일부를 간호사들을 활용해 메울 방침이다. 그동안 의사 업무를 일부 대신해온 PA 간호사 역할이 불법이었기 때문에 법제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통령실은 진료지원(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들의 행위와 역할 등을 법제화하는 작업에 나섰다. 다만, 대통령실은 구체적인 방안과 관련해 간호법 제정과 의료법 개정 등을 놓고 숙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0일 “현재 보건복지부의 시범 사업으로 간호사들의 진료행위와 관련한 지침이 마련돼 시행 중이지만, 안착을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건의료계의 관심은 간호법의 제정이 다시 추진될지 여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5월 간호법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정부는 간호법의 제정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지난해 폐기된 간호법의 내용을 그대로 되살릴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10일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며 대한의사협회(의협) 등이 지난 8일부터 시행한 '간호사 업무범위 시범사업 보완지침'에 대해 불법 의료행위를 조장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간호사분들이 안심하고 환자 보호에 매진할 수 있도록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한 것으로, (의협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 6월부터 의료단체들로 구성된 '진료지원인력 개선 협의체'를 개최했고, 지난달에는 여러 병원장의 건의도 있었다"며 "현장 상황을 고려해 병원협회와 간호협회가 함께 논의해 시범사업 지침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② 공중보건의사 138명, 전국 20개 의료기관 파견

국군수도병원 소속 군의관(중령 이호준)이 4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민간인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2024.3.4 [국방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오는 11일부터 전국 지자체 공중보건의사 138명을 전국 20개 의료기관에 파견할 예정이다. 전공의 이탈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지만, 의료 공백을 조금이나마 메우기 위한 방안이다. 

경기도는 지역 내 10명 이내의 공중보건의를 분당서울대병원과 국립암센터, 이른바 '빅5'로 불리는 서울시내 상급종합병원 5곳 중 일부 병원에 투입하기로 했다.

부산시는 11일부터 부산대병원에 공중보건의 9명을 긴급 투입한다.

정형외과 소아과, 마취과, 외과 전문의 4명과 일반의 5명이 지원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도는 지역 대부분이 의료 취약지에 해당하며 공공의료기관은 공중보건의사 의존도가 높은 상황임을 고려해, 도내에 적정한 공중보건의사 배치를 건의했다.

제주도는 도내 공중보건의 5∼6명을 제주대병원과 제주한라병원에 배치해 달라고 건의한 상태다.

정부는 이외에도 지난주 결정한 예비비 1천285억원을 신속 집행하고, 건강보험에서 매월 1천882억원을 중증·응급환자 진료 보상 강화에 투입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의료 현장에 복귀한 전공의에 대한 공격에 엄정 조치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조 장관은 10일  "일부 언론에서 현장에 복귀한 전공의에 대해 명단을 공개하고 악성 댓글로 공격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며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의 면허정지 처분보다 동료의 공격이 더 무서워서 복귀가 망설여진다고 하소연하는 전공의도 있다고 한다"며 "현장에서 밤낮으로 헌신하시는 분들을 공격하고 집단행동 참여를 강요하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 철저하게 조사하고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③ '대형병원은 중증만' 전원체계 구축 본격화…회송전담병원 운영

[사진=연합뉴스]

또한 대형병원이 중증 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자의 병원 간 이송을 지원하는 전원협력체계 구축이 본격화된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최근 대한병원협회를 통해 전국의 종합병원과 병원을 대상으로 '회송전담병원' 신청 의향 여부를 확인하는 수요조사를 진행 중이다.

복지부가 지난달 28일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환자를 집중적으로 치료하고, 그 외 병원은 전원된 경증 환자에게 적정 진료를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비상진료대책을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복지부는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환자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곳의 중등증 환자 등을 종합병원, 병원으로 신속히 전원하고자 회송전담병원을 지정·운영키로 했다.

선정된 회송전담병원 100곳은 상급종합병원에서 종합병원으로 환자를 전원할 때 필요한 병원의 치료역량 정보를 제공하고, 신속한 회송과 적극적인 진료를 위해 상급종합병원과의 협력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는다.

회송전담병원은 진료협력센터에 배치하는 상황요원 인건비, 상급종합병원으로부터 환자를 받아 진료했을 때의 정책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복지부는 이달 안에 회송전담병원 선정과 인력 배치를 완료하고 전원협력체계 구축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정부는 이미 중증 환자 진료체계를 유지하며 적극적으로 진료한 상급종합병원에는 사후 보상을 추진하는 한편, 경증 환자를 종합병원 등으로 돌려보내는 회송에 대한 보상 역시 30%에서 50%로 높이는 방안을 마련했다.

④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에게 매달 100만원씩 수련비용 지원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전공의를 중심으로 한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계속되고 있는 8일 오후 한덕수 국무총리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4.3.8 [사진=연합뉴스]

지난 8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는 이달부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에게 매달 100만원씩 수련비용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지원금은 올해 1월부터 소급해서 지급되며, 소아·청소년과가 아닌 일부 여타 과목에서 소아 진료를 전공하는 전공의에게도 함께 지급된다. 현재 진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소아 진료 전공의들은 이달 중 최대 300만원 가량을 지원받고 내달부터 월 100만원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36시간인 전공의 연속근무 시간과 80시간인 주 최대 근무시간 단축을 검토할 방침이다.

한 총리는 “전공의를 한계 상황까지 몰아간 연속 36시간 근무 관행을 고쳐야 한다”며 “전공의 근무시간을 미국처럼 24시간으로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이를 위한 시범사업을 최대한 빠르게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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