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배우 자격으로 칸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았다. 김 전 위원장은 “관객들이 저를 향해 박수를 치는데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다큐 ‘영화 청년, 동호’ 캡처]

“(나이) 90 가까운 올드보이가 배우(출연자) 자격으로 칸에 초청받아 왔다는 게 믿을 수 없는 꿈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1937년생인 김동호(87)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동호’가 제77회 칸국제영화제 칸 클래식 부문에 초청돼 지난 16일(현지시간) 월드 프리미어를 진행했다.

“지난 24년 동안 부산국제영화제 위원장 혹은 심사위원 자격으로 칸영화제를 찾았지만, 늘 감독이나 배우들의 레드카펫을 뒤따라 들어가는 것이 제 역할이었죠. 특히 상영이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면 기립박수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사진 찍을 준비부터 했고요. 이번엔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저를 향해 박수를 치는데 순간 당황했어요. 그러다 약간 눈물도 났고 뭔가 주체할 수가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18일 프랑스 칸 크루아제트 해안에 마련된 영화진흥위원회 부스(한국관)에서 만난 그는 이렇게 소감을 전했다.

김량 감독이 지난해 2월부터 1년간 촬영한 영화에는, 그가 2010년까지 부산국제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과정 및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 배우 조인성·박정자·예지원, 임권택·이창동·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등이 말하는 그와의 기억과 인연 등이 담겼다.

“모든 영화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서울대 법대 졸업 후 문화공보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30년 넘게 공직에 몸담으며 독립기념관·예술의전당·국립현대미술관·국립국악당 등의 초석을 놓았다.

칸영화제를 찾은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나의 손으로 직접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고 말했다. [사진 백은하]

대개 은퇴 이후를 준비할 59세에 그는 부산영화제를 출범시키며 인생 2막을 연다. “1995년에 부산의 젊은 친구들이 ‘국제영화제를 준비하는데 집행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제안했어요. 결국 그들의 열정에 넘어가 수락했죠.”

그 이후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1년 남짓 기간에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고, 영화를 선정하고, 게스트와 심사위원을 초청해야 했다. “맨땅에 헤딩하기처럼 ‘일단 칸영화제부터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처음 찾은 칸은 정말 대단한 영화제였다. “영화진흥공사에서 일한 4년 동안 잘 사귀어 놓은 영화제 관계자들이 있었고, 점심 자리에 초청했죠. 그 자리에 칸에서 둘, 베를린에서 셋, 뮌헨에서 하나, 몬트리올, 낭트… 그렇게 15명을 모았어요. 그날 점심 자리에서 다들 ‘부산에 가자’며 건배해 줬죠. 그러고 나니까 제대로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영화제 기간 게스트가 머문 부산의 호텔 앞은 세계 영화인의 성지가 됐다. “늦은 밤에 상영이 끝나면 갈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게스트들이 묵는 호텔 앞 모퉁이에 신문지를 깔고 포장마차를 불러 판을 벌였죠. 지나가는 배우, 감독, 영화제 관계자들이 모두 앉아 영화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는 스트리트 파티가 만들어지게 됐죠.” 축제를 신명 나게 하는 건 영화만이 아니라 사람의 힘이라는 것을 꿰뚫어 본 그의 혜안 덕분이었다.

한 나라의 문화는 예술가 개인의 역량만으로 안 되고, 그들을 지원하는 시스템과 힘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극장 관객이 4분의 1로 줄었고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어요. 게다가 한국 영화를 견인했던 박찬욱·봉준호·임권택·이창동·홍상수 뒤를 이을 젊은 감독은 안 나오고 있죠. 이런 시기에 가장 필요한 게 정부의 뒷받침입니다.” 그는 특히 최근 영화제 예산 삭감을 아쉬워했다.

지금 그의 꿈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캠코더를 산 그는 지역의 독립극장 관계자부터 일본·대만의 영화인들, 다르덴 형제, 필리핀의 브릴란테 멘도자 감독 등을 인터뷰했다.

“그들의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통해 어떻게 하면 극장 관객을 늘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담긴 다큐”를 올해 안에 완성할 계획이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경쟁 부문 초청작인 지아장커 감독의 ‘풍류일대’ 상영장으로 걸음을 바삐 옮겼다. 다큐 ‘영화 청년, 동호’의 영어 제목(WALKING IN THE MOVIES)처럼 “지치지 않는 뚜벅이”로 불리는 청년 동호는 변함없이 오늘도 영화를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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