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공백 대책으로 외국 의사 면허자에게도 환자 진료를 허용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8일 “외국 의료인의 국내 의료행위 승인을 확대할 수 있도록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지난 4월 19일 보고해 논의했고,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며 “외국 의료인 면허를 가진 자가 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복지부가 이날 입법 예고한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에 따르면, ‘심각’ 단계의 보건의료 재난 위기경보가 발령된 경우 외국의 의료인 면허를 가진 사람도 복지부 장관 승인을 받아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 현재는 ▶외국과의 교육 또는 기술협력에 따른 교환교수의 업무 ▶교육연구사업을 위한 업무 ▶국제의료봉사단의 의료봉사 업무에 한해 승인하고 있다. 개정 시행규칙은 이르면 이달 말 시행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앞서 지난 2월 19일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 사직하자, 나흘 뒤 위기경보 단계를 기존 ‘경계’에서 ‘심각’으로 조정했다. 위기경보는 상황 심각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관심→주의→경계→심각 순으로 높아진다.

외국면허 의사, 대형병원 필수과 배치 가능성

정부는 현재 ‘심각’ 단계를 유지하며, 공중보건의사(공보의)·군의관을 필요한 병원에 파견하는 방법 등으로 비상진료체계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하고, 그 공백을 메우던 의대 교수마저 사직·휴진 움직임을 보이자 외국 의사 면허자까지 동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대체수단 마련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국 의사 면허자의 경우 수련병원 등 대형 병원 필수과에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정안은 외국 의사 면허자에게 한국 의사 면허를 주는 절차와는 무관하다. 해외에서 의대 졸업 후 현지 의사 면허를 취득한 경우에도 한국 의사 면허를 받으려면 현재처럼 해당 의대가 복지부가 인정한 의대여야 하며, 국내 의사 예비시험과 국가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의료계는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또 대책의 실효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최창민(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전국의대교수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파견한 공보의·군의관도 의료사고 발생 위험 등을 고려해 전문적인 의료행위를 맡기지 못하는 상황인데, 외국 의사 면허자가 얼마나 도움 될지 모르겠다”며 “숙련된 해외 의사는 한국에 올 이유가 없고, 그렇지 않은 외국 의사라면 환자가 진료받기를 꺼릴 것”이라고 말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페이스북에 “전세기는 어디다가 두고 후진국 의사 수입해 오나요”라고 적었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이 의료공백으로 의사가 한 명도 남지 않으면 “전세기를 내서라도 환자를 치료하겠다”고 했던 걸 비꼰 것이다.

복지부는 이런 우려와 관련해 “외국 의사의 경우 환자 안전과 의료서비스 질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적절한 진료 역량을 갖춘 경우에 승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