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KBS]

[폴리뉴스 박병규 기자] 삶의 언저리마다 문득문득 떠올라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추억의 음식들이 있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사 먹던 떡볶이와 어묵처럼 끼니와 끼니 사이. 맛으로, 재미로 먹는 간식들은 세끼 만찬보다 더 입맛을 사로잡았던 마음의 주식이었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간식들이 지역의 대표 명물이 되는 시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 시절, 그 그리움과 추억을 간직한 추억의 간식을 찾아 맛의 시간 여행을 떠난다

■ 쫄면의 고향 인천, 토박이들의 추억이 담긴 ‘분식’ - 인천광역시 부평구 

‘간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밀가루로 만든 분식이다. 인천 신포국제시장은 닭강정, 공갈빵 등 다양한 맛으로 사람들을 부르는 간식 골목. 이곳에서 50여 년째 터줏대감이 된 맛의 주인공은 ‘쫄면’이다. 쫄깃한 면발과 매콤 새콤한 맛의 쫄면은 인천이 고향이다. 70년대 초, 한 제면 공장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노력과 정성이 더해지면서 탄생한 쫄면을 비롯해 냉면, 자장면, 칼국수 등, 인천은 대표적인 면식의 고장이다. 한국 전쟁 후, 구호물자로 들어온 밀과 밀가루가 도착한 곳이 인천항이었고, 밀을 가공하는 제분공장이 성행하면서 인천은 밀가루와 분식의 도시가 됐다. 

도심 속 시골처럼 옛 모습을 간직한 부평구 십정동은 열 개가 넘는 우물이 있던 곳이라 해서 ‘열우물마을’이라 부르는 우리나라 최초의 염전을 품었던 마을. 머리가 닳도록 소금을 이고 장사를 하던 고단했던 시절, 값싼 밀가루는 가장 만만한 식재료였다. 밀가루를 반죽해 뚝뚝 떼어 넣고 끓인 수제비와 소금에 짜게 절인 무짠지에 물만 부어 놓아도 한 끼가 거뜬했다. 봄이면 버들강아지나 삘기, 진달래꽃까지 따 먹던 아이들에게 밀가루에 쑥을 버무려 찐 쑥버무리는 최고의 간식이었고, 김치 다져 넣고 소를 만들어 만두라도 빚는 날은 온 동네가 잔칫날 같았다. 

염전 위에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고, 산자락마다 자리 잡았던 좁은 집들이 아파트로 변하는 사이 풍경은 달라졌지만, 음식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며 살아온 열우물사람들에게 밀가루로 만들어 먹던 소박한 간식들은 정이고 위로였다.

■ 목포여고 동창생들의 추억의 간식 - 전라남도 목포시 

 만나면 언제든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순수했고, 꿈 많던 시절, 같이 있기만 해도 마냥 즐겁던 학창 시절 친구들! 목포여고 26회 졸업생인 이옥희 씨(66세)도 친구들과 교정을 누비던 옛 추억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던 길, 영원한 오빠 가수 남진 씨를 기다리던 생가 앞을 지나면 참새방앗간처럼 매일 들르던 분식집이 하나 있다. 여고 시절, 버스비 아껴가며 먹던 추억의 간식은 바로 쑥굴레! 쑥을 넣은 찹쌀 반죽을 빚어 팥앙금을 입히고 조청을 얹은 달콤한 이 떡은 요즘 목포의 대표 명물이 됐다. 

서로 눈치 보며 쑥굴레를 하나라도 더 먹고 싶어 안달하던 여고 시절, 친구 집에 모여 만들어 먹던 간식들도 많다. 제일 쉬운 게 바로 떡볶이. 어묵만 넣고 고추장만 풀어도 맛있던 추억의 떡볶이 대신 새우에 오징어까지 해산물을 듬뿍 넣은 고급 떡볶이로 추억의 맛을 낸다. 산과 들에 꽃이 피면 꽃밭이 놀이터였고, 좋은 간식거리였다. 노란 빛깔의 돌갓꽃을 따다 곱게 화전을 부치면, 꽃처럼 예뻤던 시절이 마냥 그리워진다. 학교 앞에서 팔던 불량식품 쫀드기가 건강식으로 변신하고, 밥통에 찐 쫀드기가 인기 간식이 됐을 만큼 많은 것들이 달라진 요즘이지만, 여전히 여고 동창생들에게 친구들과 함께 먹는 간식이 최고의 맛이고, 추억을 간직하며 사는 지금이 가장 빛나는 봄날이다. 

■ 제천 사람들의 마을을 사로잡은 추억의 매운맛 -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천안 호두과자, 병천순대, 대구 납작만두, 통영 충무김밥처럼 저마다의 사연과 추억을 간직한 간식들이 지역을 대표하는 맛의 이름이 됐다. 충북 제천에도 거리의 풍경을 바꿔놓은 간식이 있다. 바로 빨간어묵! 매운맛과 감칠맛을 내는 비법의 양념장을 어묵에 얹어 먹는 매운맛의 꼬치어묵이다. 요즘은 전국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간식이지만, 이 매운맛 어묵을 처음 만들어 팔기 시작한 곳이 바로 충청북도 제천. 왜 제천에서 매운맛 음식이 발달했을까? 

제천은 대표적인 고추 생산지로 품질이 좋기로 유명한 데다, 고추 전문 시장이 따로 설만큼 인근 지역의 고추들이 모여들던 집산지. 여기에 내륙의 추운 날씨도 한몫했단다. 천둥산 박달재 아래, 30년째 농사를 짓고 사는 황경희 씨(55세) 부부. 다른 지역보다 추운 데다 아침저녁 큰 일교차 덕분에 고추도 사과도 단맛을 품을 수 있었다는데, 매운 음식을 먹으면 몸이 따뜻해지고, 스트레스도 풀려 즐겨 먹게 되었다고. 

이 댁 장독에 고추장 떨어질 날이 없다. 전을 부칠 때도 고추장이 필수. 반죽에 고추장을 풀어 넣고 매운 고추까지 송송 썰어 넣고 부친 장떡은 칼칼한 맛으로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던 1등 간식! 냇가에서 천렵으로 고기를 잡아 오는 날이면 기름 넉넉하게 두르고 바삭바삭하게 튀겨 매콤한 양념장을 얹어 만든 도리뱅뱅이, 마음이 울적한 날이면 꼭 만들어 먹는다는 매운 닭발까지. 눈물 나도록 매웠던 인생살이도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게 해준 매운맛 간식들이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위로와 응원의 음식이었다.

배우 최불암이 진행하는 KBS 1TV '한국인의 밥상'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40분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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