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경향신문 자료사진

2022년 3월 10일. 성매매 단속을 나온 경찰이 서울 강남구의 한 오피스텔에 들이닥쳤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 순간부터 카메라 셔터음이 터졌다. 당시 오피스텔에 있던 성매매 여성 A씨는 아무 옷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순식간에 알몸을 찍힌 그는 경찰관에게 사진을 지워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문제의 사진은 단속팀 소속 경찰 15명이 있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수사정보’라는 명목으로 공유되기도 했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49단독 조영기 부장판사는 국가가 A씨에게 8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A씨가 청구한 금액은 5000만원이었지만 일부에 대해서만 손해배상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A씨가 문제 삼은 경찰의 수많은 ‘위법수사’ 관행 중 나체를 촬영하고 공유한 부분만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다. A씨 측은 이번 판결이 경찰의 수사 재량권을 지나치게 폭넓게 인정한 ‘반쪽짜리’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경찰의 나체촬영·공유는 인격권 침해하는 불법행위”

재판부는 성매매 단속에서 나체를 촬영하는 수사 관행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경찰 측은 재판과정에서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촬영이 필요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경찰의 이런 행위가 “원고의 인격권, 성적자기결정권,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또 “단속경찰관은 성매매 행위를 입증할 물건이나 주변정황을 채증해 범죄 혐의를 입증할 기회가 있었다”며 “간접정황을 확보하기 위해 신체 촬영이 필요하더라도 원고가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부위가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촬영하는 등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모색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경찰이 A씨의 알몸사진을 공유한 것에 대해선 “위법 수사행위의 결과물이 다수에게 노출됐고, 관련 공무원들의 고의 또는 과실로 사진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며 “촬영 행위로 침해된 원고의 인격권은 단체대화방에 해당 사진을 공유시킴으로써 침해 정도가 더욱 심화됐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영장 없이 체포·모욕 등은 인정 안 돼··· “기본권 침해 좁게 해석” 비판

하지만 재판부는 경찰이 영장 없이 A씨를 체포하고 취조 과정에서 욕설을 한 데 대해서는 ‘위법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A씨 측이 주장한 ‘수사 과정에서의 기본권’ 보다 현장 단속과정에서의 경찰 수사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먼저 경찰이 영장 없이 A씨를 체포한 행위는 “현행범인 체포를 위한 요건 충족 여부는 현장에 임한 경찰관의 재량 판단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A씨 측은 “단속 경찰관이 이미 증거를 채집한 상황이라 원고가 인멸할 수 있는 증거도 없었고, 도망 우려가 있는 경우도 아니었다”며 긴급성을 요하는 현장이 아니었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현장의 판단이 경찰의 재량에 속한다고만 봤다.

취조 과정에서 A씨에게 욕설과 성적 수치심을 주는 발언을 한 데 대해서는 ‘추궁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라며 절차상의 문제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당시 A씨가 범행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담당 경찰관으로서는 성기 삽입이 실제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필요도 일부 존재했다”며 “발언자가 A씨를 추궁하는 공방의 과정에서 나온 발언임을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A씨의 대리인인 김지혜 변호사는 “수사권은 최소침해원칙에 따라 행사되어야 하고 체포행위 등의 요건과 한계가 있는데, 수사재량이란 명분으로 경찰이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의 위법성을 좁게 해석한 점이 아쉽다”고 밝혔다. A씨 측은 항소를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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